[시 가작] 할아버지
할아버지
올해도 감나무가 등불을 켰습니다
정오면 그 밑에서 항상 커피를 마시던 당신은
저에겐 늘 식혜를 내어주었죠
이제 저는 자라서 당신처럼 커피를 마십니다
혼자 백화점에 가서 새 옷을 살 줄도 알고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들고 창밖을 보기도 합니다
쓸모없는 것을 사랑하고
그래서 편두통을 달고살았던 선량한 당신의 마음이
훼손될 실물도 없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여러겹의 기억을 거쳐야만 당신이 떠오르는건
겨울날 볕뉘에 마음이 사그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어떤 슬픔은 자기를 기억해달라고
꼭 등불을 켜며 오곤 하니
나는 새 이마를 들고
또 흰 제비꽃이 피어나는 봄을 찾으러 떠납니다
봄의 끝에서 당신에게로 무너져내리고 싶습니다
최민제 (글로벌경영학과)
여러 겹의 기억을 거쳐서라도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일은 어쩌면 인생의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빠르게 범람되고 해체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그리움의 감정은 하나의 사치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학우분들이 삶의 순간을 치열하게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그리움의 사치를 골몰할 수 있길 바랍니다. 내실이 부족한 저의 글에 상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