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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상

[시 당선] 데스크에서

  • 작성일 2020-12-11
  • 좋아요 Like 1
  • 조회수 9175
송수연

데스크에서



시간이 흐른다

7번채와 드라이버가 궤도를 그리며 골프공을 퍽퍽 때리기 시작하면.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다음 손님을 기다리는

몸도 마음도 건조한 새벽 6시의 어린 직원.

5번 타석의 단골 손님은 대학교 교수님.

교수님의 단골 메뉴는 맹탕 아메리카노.

그는 대뜸 이천원 대신 말을 내밀었다.

너는 글을 쓴다 했지?

사회를 아주 잘 알아야해

신문을 읽어 종이신문으로 말야

청년의 시각으로 사회를 관찰하고…또…그걸로 작품을 만들어야 해

그러면 이제 된거야

버석한 손으로 커피를 제조하다말고 뒤돌아 광대 올리며

네 감사합니다

맹물커피, 꼬질한 골프장갑, 라이터를 든 채 교수손님은 사라졌다.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아, 나는 이번엔

퇴근시간을 기다리는 오후 2시의 배고픈 직원.

나의 생크림 케이크에 장촛대 네개가 꼽힐 날

나는 매끈하고 잘빠진 드라이버가 되어 있을까,

볼 수거통을 전전하여 때묻은 골프공이 되어 있을까

저 아저씨 아줌마들은 본인을 뭐라고 생각할까

아니꼬와 하면서도 인스타그램 대신 뉴스를 클릭하는 나.

삼개월 후에 골프장이 무너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 채를 휘두를 중장년의 얼굴들.

주머니에서 못쓸 공 하나가 나왔다.

버린다는 걸 깜빡했지 뭐야

나는 공과 함께 집으로 열심히 걸어갔다.

주머니 속에서 공의 파편이 손가락을 따끔 찌른다.





차혜빈 (영화영상)

저의 시를 다시 읽어보니 참 부끄럽습니다. ‘데스크에서’는 실제로 일했던 골프장에서의 경험을 비롯한 작품입니다. 마음속으로 불평의 소용돌이가 반나절에 열 번씩은 거세게 일었던 그 일자리에서 저는 저 스스로를 불쌍히 여겼나 봅니다.

‘골프공’이나 ‘매끈한 채’나 사람은 하나의 무언가로 정의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 많은 부자들이 비열한 성품을 가지고 있던 모습과 아니꼽게 보던 저 역시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한편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 골프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저는 여러 번 휩쓸리고 또 어떤 소용돌이는 스스로 일으키기도 했을 테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은 그보다 더 단단하게 버텨내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