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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 756 호 비극의 현장을 향한 여행, 다크 투어리즘

  • 작성일 202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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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1
이은민

  최근 개봉한 영화 <건국전쟁 2>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가 제주 4·3 사건을 비롯한 현대사의 비극을 단순한 이념 대립의 서사로 소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한 편의 영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중매체는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특정 시각을 강화하며, 역사 인식을 왜곡시킬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역사적 현장을 직접 방문해 그 기억을 체험적으로 되새기는 ‘다크 투어리즘’이 왜곡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역사 속의 상처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크린 속 왜곡된 이미지가 아니라 그 땅의 침묵과 흔적 속에서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성찰이 필요하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체르노빌 일일 투어 홍보 사진(사진: https://www.klook.com/ko/activity/18774-chernobyl-day-tour-kiev/)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 재난, 대형 참사 등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장소를 방문해 과거를 되새기고 배우는 관광 형태로, 1990년대 이후 새로운 관광 유형으로 등장했다. 블랙 투어리즘(Black Tourism)이라고도 불리며, 단순한 관광을 넘어 희생자와 사건을 기억하고 성찰하며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초기 다크 투어리즘은 체르노빌 같은 핵 재난 지역이나 국제 분쟁지 인근처럼 위험한 지역을 탐험하는 형태가 많았다. 이러한 방식은 역사적 사실을 체험적으로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었지만, 일부 관광객이 스릴과 호기심을 이유로 희생을 상업적 볼거리로 소비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시리아 내전 지역 일부가 관광 상품화되어 논란이 일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대의 다크 투어리즘은 과거의 비극을 통해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재발 방지를 고민하는 ‘자기반성적 관광’ 성격이 강해졌다. 해외 사례로는 체코 바츨라프 광장, 중국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일 베를린 장벽, 캄보디아 킬링필드, 베트남 구찌터널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제주 4·3평화공원과 강제징용 관련 군산 근대문화유산,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광주 5·18 사적지가 대표적이다.


  다크 투어리즘은 관광객뿐 아니라 목적지 보존에도 기여한다. 관광 수입과 자원봉사를 통해 복원과 유지 비용을 지원하고, 사회적 관심을 통해 장소의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다. 특히 제주 4·3평화공원은 희생자 유족의 트라우마 치유와 진상 규명의 공간으로 기능하며, 최근까지 이어지는 왜곡 논란 속에서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전하는 핵심 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다크 투어리즘의 확산과 시장 전망


▲세계 다크 투어리즘 시장 성장 전망 (사진: https://www.etoday.co.kr/news/view/2495169)


  과거에도 다크 투어리즘을 찾는 관광객들은 있었지만, 최근에는 소셜미디어의 확산과 코로나19 팬데믹, 세계 각지의 전쟁 등으로 위험 선호 심리가 높아지며 관련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에 따르면 2024년 다크 투어리즘 시장 규모는 약 318억 9천만 달러로 예상되며, 2034년에는 408억 2천만 달러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CAGR)은 약 2.5% 수준이다. 교육적·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경제적 잠재력까지 갖춘 산업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마켓닷US 분석에서도 유사한 전망이 제시됐다. 이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다크 투어리즘 시장은 2023년 약 296억 달러에서 2033년 402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며, 연평균 성장률은 3.1% 수준이다. 주요 성장 분야는 전쟁터 방문, 홀로코스트 관련 관광, 자연재해 체험 관광 등으로 다양하다. 


  국내에서도 지자체를 중심으로 역사 유적지 보존과 함께 다크 투어리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관광 활성화, 역사 교육, 사회적 기억 확산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격전지 DMZ펀치볼 둘레길은 전국 각지의 다양한 연령층의 방문을 유도하고, 탐방객들의 공감대를 형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DMZ접경지역과 한국전쟁 격전지 등을 활용한 다크투어리즘에 대한 기획·홍보가 구상 중이다.


다크 투어리즘의 명암


  다크 투어리즘은 비극적이고 아픈 역사를 직면할 기회를 제공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회적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김선영 홍익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우리 사회는 역사적으로 비극적 장소를 철거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더 옳다는 관념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반면교사의 계기로 삼고 지속 가능한 관광 대상으로 만드는 데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지 지원을 촉진하는 관광이라는 점에서 많은 장점을 가진다.


  반면에 다크 투어리즘에는 여러 문제점도 존재한다. 첫째, 과도한 상업화로 인해 추모 공간이 관광 상품처럼 소비되면서 지역 주민들은 소음·혼잡·무분별한 행동으로 일상을 위협받고, 생존자·목격자는 트라우마를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등 또 다른 고통을 겪는다. 둘째, 역사적 맥락을 축소하거나 특정 시기만 강조하는 선택적 기억화 문제가 나타난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기념관이 일본의 전쟁 책임을 충분히 다루지 않는 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일제강점기는 자세히 조명하면서도 해방 이후 독재정권기의 민주화운동 관련 탄압은 충분히 다루지 않는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따라서 다크 투어리즘을 진행하기에 앞서 사건의 성격과 장소의 특성을 고려한 해설 계획이 필요하다. 해설자는 사건 자체뿐 아니라 지역의 교통‧지리 환경, 지역 사회의 문화적 특성, 인근 지역과의 관계 등 공간적 배경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지, 참여자들이 답사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크 투어리즘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


  다크 투어리즘이 단순한 관광이 아닌 역사 윤리를 배우는 과정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교육적 해석과 정확한 정보 제공, 지속 가능한 보존 체계가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또한 방문객 역시 역사적 고통을 존중하는 태도와 사회적 성찰을 동반할 때 비로소 여행의 의미가 완성된다. 다크 투어리즘은 과거를 통해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다. 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해, 그리고 고통의 기억을 기반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역사를 바라보고 배우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김지연 기자, 변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