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을 만나다 (13)비녀
- 작성자 학예사
- 작성일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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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는 여인네들의 머리를 고정하는 도구로, 한자로는 ‘계(笄), 잠(簪), 채(釵)’로 표현된다. 고대부터 생김과 쓰임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비녀는 조선시대 영조 32년(1756) 머리에 크고 화려한 가발을 얹는 것을 금한 가체금지령 이후 크게 발달하였다.사치와 폐단을 이유로 금지된 가채 사용 대신 부녀자들 사이에 쪽진 머리가 일반화되면서 널리 사용되었던 비녀는, 크게 일상생활과 의례용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일상생활에서는 작은 쪽에 간소하고 짧은 비녀를 사용하였으며, 의례에는 쪽진 머리에 길고 화려한 비녀를 꽂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 밖에 족두리나 목제 가발등을 고정시키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비녀는 실용성뿐 아니라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공예품으로서 다양한 재료와 문양장식으로 그 화려함을 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체를 부풀리는데 치중되었던 사치가 점차 비녀와 족두리로 옮겨지면서 그 체계의 비용이 다시 회복되자 정조 12년(1788)에 금지령이 한 번 더 내려져 족두리나 머리장식에 값비싼 장식 재료를 더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기도 하였다.
나라의 법령을 통해 발달한 비녀는 그 쓰임이 확대되고 화려한 외관을 갖추게 되면서, 실용성과 장식성 및 사회적 신분의 상징성 등을 두루 갖춘 훌륭한 공예품이었다.